우리는 감각하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을 떠올린다. 우리 몸 바깥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이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부드러운지 거친지를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나에게 충분히 안전한지,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있는지를 알아낸다.
외부를 감각하는 일만으로는 이 세계에서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없다. 사실 오감보다 더 원초적인 감각은 몸의 안쪽을 느끼는 감각, 즉 내부감각이다. (내수용감각이라고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력은 썩 좋지 않다. 엄마 뱃속에는 빛이 없기에 시각을 쓸 일이 없다. 대신 태어나면 엄마 품에서, 그리고 속싸개에 싸여 촉각을 한껏 깨워낸다. 엄마 젖을 먹으며 미각을, 엄마 내음을 맡으며 후각을 깨워낸다. 빛이 가득한 세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을 보면서 시각도 발달시킨다. 외부 세상과 만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달시키는 감각들이다.
동시에 아기는 쾌와 불쾌를 알아간다. 배가 고프고, 오줌을 싸서 축축하고, 어딘가가 아프기도 하다. 배가 부르고, 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각성이 된다. 이같은 감각은 외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했기에 느껴지는 것이다. 내부감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 몸 안의 장기, 혈관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내부감각이다. 배고프면 위장이 수축하며 꼬르륵대고, 놀라거나 무서우면 심박수가 증가하면서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오른다. 머리가 아파오기도 한다. 배가 아플 수도 있다. 외부 자극에 의해 몸 상태가 변하기도 하고, 몸 안에서 생리적인 반응(배고픔, 배변)에 의해 신호가 오기도 한다.
우리는 내부감각을 모두 알아차리지는 않는다. 열이 나거나 가슴이 조이거나 갈증이 나는 등의 신체 감각으로 자각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와 두뇌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내부감각이 활약한다. 몸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일은 내부감각이 있기에 가능하다. 내부감각에서 혈압이 높아졌다면(혈관에 압박이 느껴진다면) 뇌가 혈압을 낮추기 위해 지시를 하는 식이다.
내부감각의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 우리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할 때 피곤한 것처럼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거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뜻도 포함한다.
실제로 내부감각이 감지하는 생리적인 상태는 살아 있는 유기체서의 어떠한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이 느낌을 정동(affect)이라고 부른다. 정동은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 각성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스펙트럼 안에서 경험된다.
(데이빗 러셀의 정동 모형)
얼마나 흥분했는지, 차분한지 (각성된 정도)와 만족스럽고 유쾌한지, 불쾌한지의 범주 안에서 우리의 두뇌는 '감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만족스러우면서 차분하면 우리는 편안하다고 느끼고, 흥분한 상태로 불쾌하다면 괴롭다고 느낀다. 내부감각이 보내는 신체 신호가 정신적인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섬엽(insula)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은 내부감각이 감정의 기본이 되는 신체 상태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트라우마 치유나 심리 치료 현장에서는 내부감각을 비롯한 신체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과 마음을 통합하여 이해하고 다루려는 시도가 일반적이다. 이전에는 인지 체계를 바꾸거나 개인이 부여한 의미를 재설정하거나 과거 경험을 이해하는 등 생각의 패턴을 바꾸고자 했다면 이제는 생각과 신념이 두뇌의 해석일 뿐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두뇌는 개인의 안녕을 위한 해석을 하게끔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사고하지만 어떤 사람은 경직되어 있다. 특히 트라우마 등 충격에 의해 세상과 자신을 느끼는 패턴이 심하게 경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어려움을 인지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일이 어렵다. 이럴 때 신체 감각을 느끼고 잘 알아차림으로써 자동으로 휙 돌아가는 부적응적인 회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여기에 치유의 실마리가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자동적인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그 과정에서 틈을 만들어내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쓸 수 있게 될 때 빛이 보이는 것이다.
TRE(Trauma Release Exercises)가 이 과정에 기여하는 부분은 내 생각엔 다음과 같다.
1. 신경계의 각성 상태를 안정시킴으로써 내수용감각이 '안전하고 편안함'을 감지하도록 한다.
2.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살피면서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섬세해진다.
3. 내가 편안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혹은 불편한 상태라면 보다 편안해지도록, 반대로 어디까지 불편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느껴보도록 하는 신체 감각 차원에서의 탐색을 통해 감각인지능력이 향상된다.
4.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는 정도에 이르도록 스스로 떠는 자세, 시간 등을 조절함으로써 자기조절력이 향상된다.
이 과정이 모두 몸의 감각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쉽게 몸 상태에 감정 언어나 분석적 사고를 매칭시킨다. 이를테면 내 몸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 점에 대해 '기분이 나빠진다', '평소에 엄마와의 문제로 내 주장을 하지 못하는데 이와 관련된 부위인 목이 조이는 것 같다'는 식이다. 잘못된 것은 없다. 나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 나의 현실과 정신적 문제, 신체 감각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도 장점이다.
하지만 이를 다시 안정시키려면 신체감각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지름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불편한 정동에 해석을 붙인 것이 감정이자 분석적 설명이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이로 인한 증상인 셈이다. 몸이 편해지면 정동이 바뀐다. 자동으로 흐르는 정동-감정-사고 패턴 외에도 더 편안하고 나에게 유익한 길이 있음을 알면 그 길을 계속 갈고 닦으면 된다. 소위 말하는 '부정적인 패턴'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깨어져나간다.
프로바이더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 몸의 어디에서 오는 것 같은지'를 묻는다. 어디인지 잘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찾고 안 찾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감정이나 정신적인 해석을 품고 내 몸을 스캔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십중팔구 어딘가 긴장된 부분을 찾아낸다. 허리나 어깨가 아플수도, 목이 조이거나 가슴이 답답할 수도 있다. 다리가 땡길 수도 있다. 뭐든 불편한 정동이 일어나는데에 영향을 주는 부위를 만나서 부드럽게 이완하도록 도울 차례다.
그 부위에 마음을 보내면서 다시 내 몸이 떨어내는 흐름을 탄다. 가만 두면 몸은 저절로 편해지기 위한 길을 간다. 지금 여기에서 안전하게 느끼면 몸은 슬그머니 회복 프로세스를 시작한다. 생명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TRE는 기존의 길을 지워내고 새 길을 만들어가는 몸 차원에서의 Reprocessing이자 Reset 과정이다.
글 | Provider 김은경
우리는 감각하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을 떠올린다. 우리 몸 바깥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이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부드러운지 거친지를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나에게 충분히 안전한지,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있는지를 알아낸다.
외부를 감각하는 일만으로는 이 세계에서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없다. 사실 오감보다 더 원초적인 감각은 몸의 안쪽을 느끼는 감각, 즉 내부감각이다. (내수용감각이라고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력은 썩 좋지 않다. 엄마 뱃속에는 빛이 없기에 시각을 쓸 일이 없다. 대신 태어나면 엄마 품에서, 그리고 속싸개에 싸여 촉각을 한껏 깨워낸다. 엄마 젖을 먹으며 미각을, 엄마 내음을 맡으며 후각을 깨워낸다. 빛이 가득한 세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을 보면서 시각도 발달시킨다. 외부 세상과 만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달시키는 감각들이다.
동시에 아기는 쾌와 불쾌를 알아간다. 배가 고프고, 오줌을 싸서 축축하고, 어딘가가 아프기도 하다. 배가 부르고, 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각성이 된다. 이같은 감각은 외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했기에 느껴지는 것이다. 내부감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 몸 안의 장기, 혈관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내부감각이다. 배고프면 위장이 수축하며 꼬르륵대고, 놀라거나 무서우면 심박수가 증가하면서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오른다. 머리가 아파오기도 한다. 배가 아플 수도 있다. 외부 자극에 의해 몸 상태가 변하기도 하고, 몸 안에서 생리적인 반응(배고픔, 배변)에 의해 신호가 오기도 한다.
우리는 내부감각을 모두 알아차리지는 않는다. 열이 나거나 가슴이 조이거나 갈증이 나는 등의 신체 감각으로 자각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와 두뇌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내부감각이 활약한다. 몸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일은 내부감각이 있기에 가능하다. 내부감각에서 혈압이 높아졌다면(혈관에 압박이 느껴진다면) 뇌가 혈압을 낮추기 위해 지시를 하는 식이다.
내부감각의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 우리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할 때 피곤한 것처럼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거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뜻도 포함한다.
실제로 내부감각이 감지하는 생리적인 상태는 살아 있는 유기체서의 어떠한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이 느낌을 정동(affect)이라고 부른다. 정동은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 각성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스펙트럼 안에서 경험된다.
(데이빗 러셀의 정동 모형)
얼마나 흥분했는지, 차분한지 (각성된 정도)와 만족스럽고 유쾌한지, 불쾌한지의 범주 안에서 우리의 두뇌는 '감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만족스러우면서 차분하면 우리는 편안하다고 느끼고, 흥분한 상태로 불쾌하다면 괴롭다고 느낀다. 내부감각이 보내는 신체 신호가 정신적인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섬엽(insula)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은 내부감각이 감정의 기본이 되는 신체 상태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트라우마 치유나 심리 치료 현장에서는 내부감각을 비롯한 신체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과 마음을 통합하여 이해하고 다루려는 시도가 일반적이다. 이전에는 인지 체계를 바꾸거나 개인이 부여한 의미를 재설정하거나 과거 경험을 이해하는 등 생각의 패턴을 바꾸고자 했다면 이제는 생각과 신념이 두뇌의 해석일 뿐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두뇌는 개인의 안녕을 위한 해석을 하게끔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사고하지만 어떤 사람은 경직되어 있다. 특히 트라우마 등 충격에 의해 세상과 자신을 느끼는 패턴이 심하게 경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어려움을 인지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일이 어렵다. 이럴 때 신체 감각을 느끼고 잘 알아차림으로써 자동으로 휙 돌아가는 부적응적인 회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여기에 치유의 실마리가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자동적인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그 과정에서 틈을 만들어내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쓸 수 있게 될 때 빛이 보이는 것이다.
TRE(Trauma Release Exercises)가 이 과정에 기여하는 부분은 내 생각엔 다음과 같다.
이 과정이 모두 몸의 감각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쉽게 몸 상태에 감정 언어나 분석적 사고를 매칭시킨다. 이를테면 내 몸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 점에 대해 '기분이 나빠진다', '평소에 엄마와의 문제로 내 주장을 하지 못하는데 이와 관련된 부위인 목이 조이는 것 같다'는 식이다. 잘못된 것은 없다. 나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 나의 현실과 정신적 문제, 신체 감각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도 장점이다.
하지만 이를 다시 안정시키려면 신체감각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지름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불편한 정동에 해석을 붙인 것이 감정이자 분석적 설명이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이로 인한 증상인 셈이다. 몸이 편해지면 정동이 바뀐다. 자동으로 흐르는 정동-감정-사고 패턴 외에도 더 편안하고 나에게 유익한 길이 있음을 알면 그 길을 계속 갈고 닦으면 된다. 소위 말하는 '부정적인 패턴'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깨어져나간다.
프로바이더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 몸의 어디에서 오는 것 같은지'를 묻는다. 어디인지 잘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찾고 안 찾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감정이나 정신적인 해석을 품고 내 몸을 스캔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십중팔구 어딘가 긴장된 부분을 찾아낸다. 허리나 어깨가 아플수도, 목이 조이거나 가슴이 답답할 수도 있다. 다리가 땡길 수도 있다. 뭐든 불편한 정동이 일어나는데에 영향을 주는 부위를 만나서 부드럽게 이완하도록 도울 차례다.
그 부위에 마음을 보내면서 다시 내 몸이 떨어내는 흐름을 탄다. 가만 두면 몸은 저절로 편해지기 위한 길을 간다. 지금 여기에서 안전하게 느끼면 몸은 슬그머니 회복 프로세스를 시작한다. 생명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TRE는 기존의 길을 지워내고 새 길을 만들어가는 몸 차원에서의 Reprocessing이자 Reset 과정이다.
글 | Provider 김은경